* 흰 지팡이에 의지해서 여의도 방송국까지
심준구 (KBS제3방송 시각장애 방송인)
내가 조만호 님을 처음 만난 건,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였습니다. 조만호 님이 ‘심준구의 세상보기’에 출연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조만호 님은 부산에서 방송국이 있는 서울 여의도 스튜디오까지 흰 지팡이만을 의지하고 혼자서 오셨습니다. 1급 시각장애인이 장거리 여행을 혼자서 하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해서 참 의지가 굳건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송 들어가기 전, 대화를 나눌 때, ‘참 진솔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방송을 진행하면서 이런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내려 놓음으로써 스트레스와 상당 부분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방송 중에 했던 조만호 님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조만호 님이 운영하는 지압원 홈페이지에는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유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람을 위하는 그의 마음과 지압원 원장으로서의 철학이 잘 담겨 있는 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우 단체에서 활동하며 고통을 겪는 많은 분들을 위해 상담한 그의 경험도 소중합니다.
조만호 님은 망막박리로 인해 중도에 시력을 상실한 분입니다. 망막박리는 수술로 완치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수차례 시도된 수술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조만호 님은 결국 실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때 슬하에는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가장이 시력을 상실하게 될 때 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당하는 절망과 충격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이래저래 상심이 클 상황입니다. 때문에 실망과 충격이 더욱 컸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조만호 님은 이러한 좌절, 고통들을 모두 이겨내고 불의의 실명으로 인해 발들이게 된 전혀 다른 세계에서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내고 계십니다.
숱한 역경을 헤쳐 나온 그의 삶이 잘 담겨,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이 책이 중도장애우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원치 않은 일로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