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5주년을 맞이하여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여행 하루 전날 아내는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지 “이런 날도 다 있나, 꿈만 같다.”고 말했다. 막상 제주도에 간다니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그동안 어렵게 살아오면서 나와 가정을 위해 헌신했으니 이제 여행도 다니고 조금의 여유를 누릴 때도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좋은 곳을 찾아다니자고 말했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타보지도 못한 비행기를 시력을 잃고 나서야 타게 되니 나 역시 만감이 교차했다. 아내도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제까지 아내에게 빚진 것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으나 25년 동안 비행기 한 번 못 태워준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큰아들은 여행경비가 담긴 봉투를 우리에게 내밀면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것 많이 보고 오라며 축하해 주었다. 아이들이 큰 탈 없이 성장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이제는 다 커서 아들의 용돈까지 받아보다니 감동이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제주도의 바람과 햇빛과 파도소리는 내가 그동안 경험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물론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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