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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KBS 라디오 방송하러 서울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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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2:50 조회1,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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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사가”라는 장애우 책자에 내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이야기한 이복남 씨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 KBS 제3방송국 박수빈 방송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방송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출연료는 많지 않았지만 KBS 제3방송은 우리 장애우들이 많이 청취하는 방송이었다. 나는 방송 출연을 수락했다. 나의 삶이 장애우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자신감을 줄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나에게도 좋은 날도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언젠가는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방송하는 날짜와 시간과 인터뷰 내용을 전날 저녁에 통보를 받았다.

 

  녹음은 서울 방송국에서 하기로 했다. 막상 서울을 간다 하니 처음이라 나름대로 긴장이 되었다. 새벽 5시 30분 열차표는 일주일 전에 혼자 부전역까지 가서 예매를 한 터였다. 주위 사람들이 혼자서 서울을 어떻게 가겠느냐며 걱정을 했지만 나는 혼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혼자 서울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온통 방송할 생각뿐이었다. 평소처럼 정리하고 아침밥은 추어탕을 끓여 먹고 나니 4시였다. 세수하고 면도도 했다.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잘 하고 못하고는 방송에 가서 할 일이었다.

 

  나의 눈과 발이 되어주는 자비콜을 불러서 부산역에 도착했다. 기사분이 기차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었고 KTX 여직원에게 나를 부탁했다. 열차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초초한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혼자 서울에 간다는 것보다는 처음 방송에 출연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았다. 열차가 천천히 부산역을 떠나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예전에 실명하지 않았을 때처럼 창밖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동이 트면서 어둠이 벗겨지는 밝은 아침을 마음으로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보니 얼굴에 따스한 아침 햇살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가 시작되는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앞길도 오늘의 태양처럼 환할 거라 생각했다. 꿈과 희망에 부푼 나를 태운 기차는 서울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부산역에서 미리 연락해놓은 공익요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의도 KBS방송국에 간다 하니 지하철과 택시 중 어느 교통편으로 갈 것인지 물었다. 이왕 서울에 온 김에 서울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그는 나를 서울역 지하철까지 안내해주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혼자서 가야 했다. 부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사람이 많은 곳이라 주위가 제법 웅성거렸다.

 

  신길동에서 내려 5 호선 지하철을 타야 한다고 했다. 처음 길이고 보이는 게 없으니 수시로 물어야 한다. 신길역에서 5 호선 환승하는 곳까지는 제법 멀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힘들게 지하철을 탔다. 여의도까지는 겨우 한 정거장이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방송국에 오니 9시 30분이 조금 못 되었다. 내가 도착했다고 경비실에서 연락을 하자 직원이 와서 나를 녹음실로 데려갔다. 무사히 방송국까지 오니 안심은 되었으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혼자 오셨습니까?” 하고 담당 PD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인터넷 기사에서 본 것처럼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녹음을 하러 올 때 방송출연자들 대다수는 동행과 함께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뵈는 게 없다보니 겁나는 게 없어서 혼자서도 잘 다닙니다.” 했더니 모두들 웃었다. 생각보다 내가 “더러운 꼴을 안 보고 살면 젊어집니다.” 했더니 모두가 다시 한 번 웃었다.

 

  진행자인 심준구 씨와 녹음을 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안정되었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가는 것과는 달리 혼자 서울을 돌아다녀봐야 관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방송국 앞에서 심준구 씨의 아내가 택시를 잡아주었다. 그 길로 서울역에서 다시 부산 가는 열차에 올랐다.

 

  서둘러 귀향을 하는 것이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무사히 방송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모르는 식당에 찾아가는 것도 어렵고 해서 급히 단골 추어탕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선생님, 서울 간 김에 구경하고 오지 왜 일찍 내려왔는교?” 조남숙 씨가 물었다. “내가 서울 가보니 빌딩하고 사람은 많은데 구경할 곳은 없더라. 그래서 그냥 왔다.”고 했다. 그렇게 나 홀로 서울 나들이는 완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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