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HOME  >  로그인
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멀어져가는 남매의 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20 조회1,659회 댓글0건

본문

  내가 장애를 갖게 되어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도 동생들은 내게 쌀 한 되 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해 한다거나 동생들에게 손을 벌려본 적은 없었다. 저마다 사느라고 바쁘고 힘드니 제 몫을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오빠가 되어 자신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게 그들로서는 더욱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집안에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 나 없는 사이에 다들 찾아와서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 뜯고 한바탕 뒤집어 놓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사람인지라 서운하고 화가 났다.
 
 
  눈도 보이지 않는 나를 버리지 않고 사는 올케에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가다니 형제간에 할 짓은 아니었다. 그 충격에 아내는 며칠을 몸져누웠다. 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런 일이 한차례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아내는 밤에 자다가도 놀라 깨고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형제들의 전화가 무서워서 전화번호를 바꾸는 일까지 일어났다.

 

  일의 발단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팔순이 넘어선 아버지는 아무래도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입원하는 날이 많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장남이면서도 아버지를 모시지 못했고 아들이면서 병원비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노점 문구점을 하면서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이었고 그나마도 내가 검정고시를 치르고 지압공부를 하면서 아내 혼자 벌어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던 중이었다.

 

 

  나로선 아내 몰래 조금씩 모은 돈을 아버지 용돈으로 드리는 게 나로선 최선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으나 병원비를 부담해야 했던 형제들에겐 내가 나 혼자 살겠다고 모른 체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서운하고 괘씸했던 것 같다. 형제들은 내게 대놓고 장남 역할을 못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럴 때면 나도 사람인지라 지난 날 중국집을 떠돌며 번 돈을 집에 보내고 한쪽 눈을 잃고서도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더운 여름, 추운 겨울 할 것 없이 이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단무지 장사를 했던 어려운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꾹 참았다. 그런 이야길 해봐야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여유가 있어 형제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당시 나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 즈음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형수마저 집을 떠났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집안의 가장 큰 역할을 해주던 형수가 아버지를 혼자 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장남인 나에게 아버지를 모셔가라고 했다. 우리 네 식구가 두 칸짜리 셋방에서 겨우 살아갈 때였다.

 

   리어카 이동문방구에서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받아 어렵게 생활하던 때였으므로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게 나로선 가능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앞이 보이지 않는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매번 병원에 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고 아버지의 밥상조차 차려드릴 수 없었다. 그러니 남편수발과 아이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리어카를 끌고나가 장사하는 아내의 짐만 커질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이미 충분히 힘에 부치는 것이었다.

 

   나는 안마협회 과정을 이수하고 지압사가 되어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달라고 형수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형수는 자신도 할 만큼 했다며 매정하게 거절했다. 형수는 끝내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고 조카들과 냉정하게 우리 집안을 떠났다.

 

  내가 모시지 못하니 아버지는 나머지 형제들의 부담이었다. 연로한 아버지가 자식들의 짐이 되어 이리저리 떠맡겨지는 것은 말할 수도 없이 가슴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해드릴 수 없는 것이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형제들이 화가 나서 몰려온 건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자신들에게 갔기 때문이고 그건 모두가 큰아들인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커다란 원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우리 형제들은 부모가 맺어준 형제의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 내가 더 큰 그릇이 못된 탓이겠지만 남들한테서 받는 차가운 눈길보다 형제들에게 당하는 무시와 수모는 나와 가족들에겐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상호명 조만호 약손지압원   |  대표명 조만호  |  사업자등록번호 432-90-00343 신한은행 110-497-595635  
TEL 051)805-1237 / FAX 051)805-9633 / 010-6337-9675  |  ADD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동성로 134
E-mail manhoooo@hanmail.net  |   Copyrightsⓒ2021 조만호지압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