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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대인기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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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58 조회1,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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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평에서 장사도 하고 살다보니 집밖에 나가면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눈을 잃은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능하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멀쩡하게 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으니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고 세상사가 다 싫었다.
 
  대인공포증이었다. 가능하면 사람과 접촉을 피하려고만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밖에 나갈 때에는 가능하면 밤에 집사람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고 아는 사람 있는 곳이면 가지 않았다. 집에 누가 오면 다락으로 피신하면서 지냈다.

 

  수술비는 들어가고 당장 수입이 없으니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와 조카들이 힘들게 살았지만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내가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하루 속히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방구였다. 큰 밑천이 들지도 않았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시장 옆에 방 딸린 가게를 얻었는데 월세가 많았다. 그러나 학교 앞 잘 되는 문방구가 아니다 보니 하루하루가 적자였다. 월세도 비상금으로 모았던 것을 풀어 주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문방구를 한다지만 말만 문방구지 장사는 한심할 정도로 되지 않았다. 사위가 못살다보니 장모님이 오실 때마다 양식을 가져오시곤 했다. 할머니가 오시니 철없는 아이들은 통닭을 사달라고 졸랐다. 할머니가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서 통닭을 두 마리 시켰는데 그 많은 것을 금방 먹어 치웠다. 사는 게 힘들어서 아이들 통닭 한 번 못시켜 주었으니 아버지로서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아이들에게 지금 못 다한 사랑을 언젠가는 보상을 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맹세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어린 아이들과 아내에겐 내가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했다.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간다면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할 자신이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하자 아내도 내 뜻에 따라주었다. 새로 이사할 곳을 알아보고 저소득층을 위한 학장동 13 평 임대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여기서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임대아파트를 전세로 얻었지만 이사할 날짜까지는 어쨌든 신평동 월세를 감당해야 했다.

 

  없는 사람에게 다달이 돌아오는 월세 지불 날짜는 너무도 자주 돌아왔다. 장사도 되지 않는 문방구를 지키며 월세를 내느라 아내의 얼마 되지 않는 패물마저 팔아 치운 지 벌써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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