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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처음 취직한 중국집 천순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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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4:32 조회1,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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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씨 아저씨를 따라 간 곳은 충무동 육교 밑 왕자극장 옆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잘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실명하기 전에 가봤을 때는 그중 일부가 헬스장으로 바뀌긴 했어도 1층은 여전히 중국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커다란 5층 건물의 1층과 2층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중국집의 규모에 놀랐다.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도 생소했다. 게다가 한문이 여기저기 큰 글씨로 붙어 있었는데 빨간 글씨가 좀 무섭게 보이기도 했고 사람도 많고 낯선 곳이라 긴장도 많이 되었다.

 

  사장은 정 씨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대충 나를 훑어보더니 일을 하라고 하였다.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작은 분식집에서 일하던 괴정 촌놈이 큰 가게에서 일하려고 하니 기가 죽는 건 당연했다. 주방장과 2층 홀에서 서비스하는 사람도 중국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중국말로 이야기하였다. 허드렛일을 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환경으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원래 중국집 종업원들은 빈번히 나가고 들어가고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한두 달이 지나자 일도 익숙해졌고 종업원들이 수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 어느 새 나는 중고참이 되어 있었다. 하는 일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아침은 주로 빵을 먹었고 밥을 먹는 것은 일주일에 2~3 회 정도 뿐이었다.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빵은 식빵처럼 생겼는데 매우 딱딱했다. 그래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점심은 거의 우동이었는데; 해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돼지비계 몇 점, 야채 몇 조각 뜨는 것이 전부였다. 자장면은 토요일 점심에 주었는데 잘 먹고 살던 시절이 아니라 한 번에 많이 먹다보니 자주 배탈을 일으키곤 했다.

 

  저녁에는 주로 누룽지를 끓여서 주었다. 큰 가마솥에 밥을 했는데 워낙 많은 밥을 하다 보니 밑밥은 거의 타서 누룽지를 끓여서 직원들에게 주었다. 제대로 배를 채울 수 있을 때는 2층 손님들이 남기고 간 요리를 먹을 때였다. 요리들은 기가 막히도록 맛있었다. 그것도 서열이 있다 보니 초보자는 먹기가 쉽지 않았다. 때로 주방에 한 번씩 들어가면 튀김이나 요리를 하고 남은 음식을 몰래 집어먹곤 했다. 그러다 주방장에게 걸리면 커다란 국자로 맞곤 했지만 그래도 훔쳐 먹는 그 맛은 일품이었다.

 

  중국집 일이란 대부분 배달이었다. 이따금씩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주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메뉴는 반드시 면 종류여야 했다. 밥 종류는 취소가 되어도 다시 팔 수 있었지만 배달 시간이 길어져 면이 불고 퍼지면 되팔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충무동에는 극장도 많고 노점상도 많았다. 그래서 거짓 배달주문을 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웠다. 주인에게 '이 나쁜 새끼야' 하고 욕은 좀 들었지만 욕이 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해야지 자주 하다 걸리면 주인이 장부에 적어놓았다가 봉급 줄 때 음식 값을 빼고 주기도 했다.

 

  고참이 되자 2층 홀에서 서빙을 하게 되었다. 2층에서 하는 일은 배달보다 쉽고 남은 요리도 종종 먹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손님들이 주고 가는 팁이었다. 2층 책임자에게 탄로 나면 다 빼앗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팁 받은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국집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배달과 서빙만 하면서 주방 일을 배우는 건 어려웠다. 극장이 많은 거리여서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와서 시간도 없었고 초보는 아예 주방 출입을 시키지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집에서는 주방 일을 배울 수 없을 것 같았다. 홀 서빙과 배달을 평생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순반점을 그만두고 정 씨 아저씨가 주방장으로 있는; 광복동 화공약품 거리에 있는 순화루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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